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개봉 전 단 한 장의 포스터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100억 엔 이상이 투입된 7년 작업의 결과물을 관객의 입소문에만 맡긴 겁니다. 저는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마치 거장의 서재에 초대받아 그의 일기장을 몰래 들춰본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화려한 판타지 너머로 83세 노장이 평생 숨겨왔던 상처와 고백이 낱낱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광고를 포기한 진짜 이유
지브리의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는 "정보 과다의 시대에 정보가 없는 게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건 아닐까"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전략이 단순한 마케팅 실험이 아니라, 미야자키 감독 자신의 내밀한 고백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2022년 지브리의 순자산 비율은 92.4%에 달했고, 축적된 이익 잉여금만 219억 엔이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광고를 못 한 게 아닙니다.
제작비 100억 엔, 제작 기간 7년. 일본 상업 영화가 보통 10억 엔으로 30억 엔을 벌려고 애쓰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규모입니다. 신 고질라조차 13억 엔을 써서 "너무 많이 썼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미야자키 감독은 손으로 그리는 걸 7년간 고집하며 이 금액을 쏟아부었습니다. 저는 이 집요함이 단순한 완벽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마지막 고백을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남기려는 노인의 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개봉 당일 엔딩 크레딧에서조차 배역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팬들은 인터넷에서 배역 맞추기 게임을 하며 즐거워했죠. 요네즈 켄시와 주고받은 모스 부호 같은 암호 메시지, 딱 한 장의 포스터. 이 모든 게 기존 광고 방식에 대한 반항이자, 작품을 온전히 관객의 손에 맡기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실제로 10월 중순 기준 흥행 수입은 84억 엔으로 목표치인 100억 엔에는 못 미쳤지만, 한 리서치 기업 조사에서 긍정 평가가 86%에 달했습니다. 돈보다 진심을 선택한 노장의 승부였습니다.
마히토는 미야자키 자신이고, 탑은 그의 내면이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마히토는 공습으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의 재혼 상대인 이모 나츠코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침착하고 반듯한 소년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머리를 돌로 찍어 피를 쏟아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을 때린 아이들에 대한 복수처럼 보이지만, 진짜 목적은 '자해'였기 때문입니다. 마히토는 학교를 가기 싫었고, 새어머니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상처 입혀 그 고통을 아버지와 나츠코에게 보여준 겁니다.
미야자키 감독도 어린 시절 공습을 경험했고, 10년간 결핵을 앓던 어머니 미코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습니다. "칭찬을 들은 기억이 전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엄격한 어머니였죠. 그런데 취직할 때 호적등본을 떼어보고, 아버지에게 첫 부인이 있었고 그 부인 역시 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는 1년도 안 돼 미코와 재혼했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등을 돌렸습니다. 영화 속 아버지 쇼이치와 나츠코의 다정한 신혼 생활을 바라보는 마히토의 차갑고 복잡한 시선에는, 어린 미야자키가 느꼈을 배신감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마히토가 요시노 겐자부로의 소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 눈물을 쏟는 장면은 미야자키 감독 자신의 경험입니다. 1937년 전쟁이 시작된 해에 출간된 이 책은, 어린 미야자키에게 "사랑, 정의, 우정"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삶을 긍정해주었습니다. 그는 1990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걸 긍정해주길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다." 소년 시절 받은 그 울림이, 83세가 된 지금 영화 제목으로 돌아온 겁니다.
상처를 안고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
영화 속 '아래 세계'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변옥, 즉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 세계를 모티브로 합니다. 와라와라는 생명이 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고, 펠리컨은 그들을 잡아먹으며 삶과 죽음 사이를 떠돕니다. 큰할아버지는 13개의 돌로 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이 13개는 미야자키 감독이 만든 13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의미합니다. 큰할아버지는 미야자키의 오랜 동료였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고, 왜가리는 45년간 함께해온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입니다. 키리코 할머니는 색채 설계를 담당해온 야스다 미치오입니다.
저는 큰할아버지가 마히토에게 "하나를 더 쌓아 세계를 이어가라"고 제안하는 장면에서, 미야자키 감독의 깊은 고민을 읽었습니다. 그는 평생 후계자를 찾았지만, 아들 미야자키 고로조차 그 짐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지브리는 누구에게도 넘겨지지 않고 닛테레 산하로 들어갔죠. 마히토가 큰할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기 머리의 상처를 가리키며 "이것은 내 악의의 증거"라고 말하는 순간, 저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완벽한 세계는 없고, 상처 없는 인간도 없습니다. 마히토는 그 상처를 인정하고, 불타는 현실 속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영화 마지막에 마히토는 왜가리에게 "이 일을 어떻게 기억할 거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왜가리는 "대단한 능력은 없으니 금세 잊어버릴 것"이라고 답하죠. 이 대사에 저는 미야자키 감독의 겸손과 체념이 동시에 담겨 있다고 느꼈습니다. 자신의 작품이 대단한 메시지를 남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각자가 작은 답을 얻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겁니다. 제가 극장을 나서며 느낀 건, 이 영화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답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우리 손에 쥐여주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마히토가 자기 머리의 상처를 만지는 마지막 장면처럼, 저 역시 제 안의 흉터를 매만졌습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 상처로 인해 깨달음도 남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83년 인생을 담은 이 영화로, 완벽한 세계 대신 불완전한 현실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친구를 사귀고 사랑하며, 악의와 상처를 안고도 앞으로 나아가라고 응원합니다. 거장의 마지막 고백은 결국 다음 세대를 향한 뜨거운 격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