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 준비로 하루하루를 불태우던 어느 날, 저는 <소울>을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취업만 하면 행복할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달려왔는데, 영화 속 조 가드너가 꿈의 무대에 선 뒤 느낀 허탈함이 제 안의 불안을 그대로 건드렸거든요. 솔직히 이 영화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목표만 쫓아 달리던 제게 "지금 이 순간은 어떻게 살고 있어?"라고 묻는 거울 같았습니다.
스파크는 꿈이 아니라 살아있음 그 자체
<소울>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 바로 '스파크(Spark)'입니다. 영화 초반부, 태어나기 전 영혼들이 모이는 '인생 연구소'에서는 스파크를 얻어야만 지구로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처음엔 저도 "아, 스파크는 꿈이나 목표를 의미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 조 가드너가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향해 평생을 달려온 것처럼요.
그런데 영화는 이 믿음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조가 꿈에 그리던 도로시아 윌리엄스와의 공연을 마친 뒤, "이제 뭐지?"라는 공허함을 느끼는 장면이 나옵니다. 평생을 준비해온 그 순간이 끝나자 남은 건 예상치 못한 허탈함이었죠. 제가 취업 준비를 하면서 느낀 불안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합격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라고 믿었지만, 정작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연했거든요.
영화 후반부에서 테리가 말합니다. "스파크는 목적이 아니라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된 상태"라고요. 22번 영혼이 피자 한 조각을 먹고, 가을 단풍잎이 떨어지는 걸 보며 감동하던 장면들이 바로 그 증거였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고 난 뒤, 퇴근길에 마주친 노을이나 친구와 나눈 웃음이 제게도 '스파크'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2번 영혼이 보여준 일상의 경이로움
22번 영혼은 수천 년 동안 태어나기를 거부해온 존재입니다. 간디, 마더 테레사, 링컨 같은 위인들이 멘토로 나섰지만, 그 누구도 22번에게 삶의 의미를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냉소와 두려움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막상 지구에 내려와서는 모든 것에 놀라워하거든요.
조의 몸에 들어간 22번이 뉴욕 거리를 걸으며 피자를 먹고, 이발소에서 대화를 나누고, 지하철에서 버스킹을 듣는 장면들은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저도 취업 준비에 매몰되어 친구들과의 약속을 미루고, 좋아하던 음악도 듣지 않으며, 그저 목표만 바라보며 살았거든요. 22번이 "이게 바로 살아있다는 거구나"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제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정확히 보여줬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22번이 단풍나무 씨앗을 주머니에 넣는 장면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순간이, 누군가에겐 삶을 살아갈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였죠. 제 경험상 이런 작은 순간들이 쌓여야 큰 목표를 향해 달릴 힘이 생기더라고요. 영화를 본 뒤로 저는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나, 퇴근 후 산책할 때 그 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 가드너의 꿈과 현실 사이
조 가드너는 중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면서도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규직 제안을 받았을 때 어머니는 기뻐했지만, 조는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가?"라는 회의감을 느낍니다. 저도 비슷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게 목표였지만, 정작 그게 제가 진짜 원하는 삶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거든요.
조가 도로시아 윌리엄스의 밴드에 합류하게 됐을 때, 그의 눈빛은 살아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연을 마친 뒤 그가 느낀 공허함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제 뭐지? 내일은 또 무슨 일을 해야 하지?" 평생을 준비해온 그 순간이 끝나자,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사실이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죠.
저는 이 장면에서 픽사가 던지는 메시지를 정확히 읽었습니다. 꿈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놓치는 일상의 순간들이야말로 삶을 채우는 진짜 연료라는 거요. 조가 22번의 물건들을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장면은, 제가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이 장면에서 울컥했습니다.
결국 픽사가 전하고 싶었던 것
<소울>은 기존 애니메이션들이 강조하던 "꿈을 이루라"는 메시지를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픽사는 오히려 "삶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조가 22번에게 지구 통행증을 건네며 "넌 잘할 수 있어"라고 미소 짓는 장면은, 삶이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매 순간을 살아내는 것 자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다만 저는 이 영화가 모든 관객에게 같은 방식으로 다가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목적 없이 살아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는 자칫 현실 안주로 비칠 수 있거든요. 저 역시 처음엔 "그래도 목표는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픽사가 말하고 싶었던 건 목표를 버리라는 게 아니라 "목표만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것 같습니다. 조는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고, 22번은 결국 지구로 향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말라는 거죠. 제 경험상 이런 균형이 가장 어렵지만, 그래서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소울>을 보고 나서 저는 취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되,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나 혼자만의 시간도 소중히 여기려고 합니다. 결국 삶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이라는 말이,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실감났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제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라는 걸, 22번 영혼이 가르쳐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