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은 혹시 "내가 지금 배우는 이것, 나중에 정말 쓸모 있을까?"라는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영화 <엑시트>는 취업도 못 하고 클라이밍만 하던 남자가 유독 가스 재난 상황에서 바로 그 실력으로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남들이 '시간낭비'라 여기던 제 작은 취미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큰 도움이 됐던 경험이 있어서, 이 영화를 보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평범한 백수가 재난 속 히어로가 되는 순간
주인공 용남은 대학 시절 산악부 출신이지만, 현재는 취업 준비생 신분입니다. 어머니 칠순잔치에서 대학 시절 짝사랑하던 여성을 우연히 만나고, 그녀와 재회의 설렘을 느끼던 찰나 건물 밖으로 정체불명의 유독 가스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이 가스에 노출되면 호흡기가 손상되어 즉시 사망에 이르는 상황.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고, 건물 안으로 대피하지만 곧 옥상 문마저 잠겨버립니다. 솔직히 저는 이 장면에서 "진짜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용남의 클라이밍 실력이 빛을 발합니다. 건물 외벽을 타고 내려가 방독면을 구하고, 다시 올라와 사람들을 구출하는 그의 모습은 '남들이 무시했던 나의 노력이 언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짠내 나는 영웅의 탄생, 그게 왜 통할까?
이 영화가 다른 재난 영화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주인공이 슈퍼맨도, 소방관도, 군인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그냥 백수입니다. 취업도 안 되고, 집에서는 눈치 보이고, 짝사랑하던 여자 앞에서는 쪽팔린 순간만 연발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며 느낀 건, 바로 이 '짠내 나는 설정'이 관객에게 강력한 대리만족을 준다는 점입니다. 용남은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그저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 하나로 움직입니다. 군인인 처남마저 쓰러진 상황에서 그가 보여주는 용기는 "나도 저런 상황에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심어줍니다.
특히 조정석과 임윤아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은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두 배우 모두 실제로 건물 외벽을 타고 뛰어내리는 등 위험한 액션을 소화하며, 관객은 그 긴박함을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습니다.
옥상 문이 잠겼을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영화 중반부, 옥상 문이 자동 잠금으로 막히고 사람들이 갇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용남은 모스 부호로 구조 신호를 보냅니다. "따따따 따 따 따 따따따" - SOS 신호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막막한 현실 앞에서 나는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재난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극한의 긴장감 속에서도 용남과 의주가 주고받는 농담, 서툰 로맨스는 관객에게 숨 쉴 틈을 제공합니다. 이런 연출 덕분에 <엑시트>는 무겁고 답답한 재난 영화가 아니라, 유쾌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오락 영화로 자리매김합니다.
클라이밍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역동적인 액션은 도심 속 빌딩 숲을 매력적인 탈출 공간으로 재탄생시킵니다. 평소에는 그저 지나치던 건물 외벽이, 이 영화에서는 생존을 위한 루트가 됩니다.
가벼운 듯하지만, 아쉬움도 남는 영화
물론 비판적으로 보자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재난의 원인이나 배후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어서, 서사적 완결성 면에서는 다소 가벼운 인상을 줍니다. 유독 가스가 왜 발생했는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는 거의 다루지 않고 오직 '탈출' 그 자체에만 집중합니다.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들의 체력이 거의 무한대처럼 묘사되는 점도 현실감을 떨어뜨립니다. 건물 수십 층을 오르내리고, 밧줄 없이 외벽을 타는 장면들은 장르적 허용을 감안하더라도 과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면에서 몰입이 깨지는 관객도 분명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엑시트>는 재난 영화의 고질적인 병폐인 '과도한 신파'와 '무능한 정부 묘사'에서 벗어나, 주인공들의 기발한 재치와 생존 본능에 초점을 맞춘 점에서 신선합니다. 대형 재난 속에서도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는 연출은, 관객에게 "지금 당장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모습도, 언젠가 누군가를 구하는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든든한 위로를 전합니다.
저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 여운이 남았습니다. 직접 건물 외벽을 탄 적은 없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 한 걸음 더 내딛는 용기를 간접적으로 체험한 느낌이었습니다. <엑시트>는 무거운 재난을 가볍게 이겨내는 긍정의 힘을 전해준, 유쾌하고도 찡한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