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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오 영화 후기 (로또 당첨, 남북 협상, 코믹 연기)

by Film Index 2026. 2. 24.

 

전역을 코앞에 둔 말년병장이 57억 로또에 당첨됐는데, 그 복권이 바람에 날려 북한으로 넘어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영화관 좌석에서 이 황당한 가정을 마주하며, 주머니 속 복권 한 장에 의지하던 제 모습이 떠올라 씁쓸하면서도 웃음이 터졌습니다. <육사오>는 바로 이 설정 하나로 관객을 휘어잡는 영화입니다.

57억이 만든 남북 협상, 진짜 가능할까요?

영화는 DMZ 최전방 GOP에서 근무하는 박찬호 병장(고경표)이 934회 로또 1등에 당첨되면서 시작됩니다. 세금을 떼고 난 실수령액 39억 1,495만 9,762원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가 화면에 뜨는 순간, 저는 "아, 이 영화 진짜 디테일에 신경 썼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로또 용지를 확인하던 박 병장의 손에서 복권이 바람에 날아가 버립니다. 그것도 철책선을 넘어 북한군 용어(이이경)의 손에 떨어지죠. 북한에서는 로또 자체를 모르니, 용어는 이게 뭔지 궁금해서 아는 척 많은 전진(고경표)에게 물어봅니다. "남조선 인민들의 고혈을 짜내는 극악무도한 자본주의 착취 기술"이라는 설명이 나오는데, 솔직히 이 부분에서 웃음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용어가 장난 삼아 번호를 확인했다가 1등인 걸 알게 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박 병장은 57억을 되찾기 위해 북으로 침투하고, 용어는 이 복권을 어떻게든 현금화하려고 합니다. 두 사람이 DMZ 한복판에서 마주친 순간부터, 이 영화는 본격적인 남북 협상 코미디로 돌입합니다.

고경표와 이이경의 티키타카, 예상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러 간 이유 중 하나는 고경표와 이이경의 조합이었습니다. SNL 코리아에서 보여준 능청스러운 연기력을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박 병장과 용어가 JSA 공동경비구역에서 로또 배분 비율을 놓고 파워포인트(북한 말로는 '일점')까지 동원해 협상하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납니다.

특히 박 병장이 "유실물법에 따르면 보상금은 최대 20%"라고 주장하자, 용어가 "그럼 나는 80?"이라며 맞받아치는 장면에서 저는 "아, 이게 진짜 사람 사는 얘기구나" 싶었습니다. 이념이고 뭐고, 결국 돈 앞에선 다들 똑같은 계산기를 두드린다는 걸 이렇게 유쾌하게 보여줄 수 있다니 신선했습니다.

영화 중반부에 나오는 군무 장면도 압권입니다. 남북 병사들이 "공동급식, 공동타막, 공동경비구역"을 외치며 춤을 추는 모습은, 제가 본 남북 관련 영화 중 가장 파격적이면서도 유쾌한 장면이었습니다. 고박스(박세완)까지 가세하면서 삼각 구도가 완성되는데, 이 부분은 예고편에 없던 반전이라 더 재밌었습니다.

후반부 개연성,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탄탄한 설정과 웃음 포인트로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이건 좀 억지 아닌가?" 싶은 장면들이 나옵니다. 로또를 되찾기 위한 과정에서 너무 우연에 의존하는 전개가 몇 번 나오는데, 이 부분은 코미디 영화니까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긴 합니다.

다만 결말 부분에서 급작스럽게 감동 코드로 전환되는 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초반의 날카로운 유머와 풍자가 주는 쾌감에 비해, 마무리는 다소 평이하게 느껴졌거든요. "결국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메시지 자체는 좋지만, 전달 방식이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머물렀다는 점이 제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그래도 영화관을 나서며 든 생각은 "오랜만에 극장에서 이렇게 웃어봤다"는 거였습니다.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57억이라는 구체적인 숫자 하나로 남북 관계를 이렇게 가볍고도 의미 있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정치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데, 보고 나면 "우리도 결국 비슷한 고민 하며 사는구나" 싶은 여운이 남는 영화입니다.

만약 당신이 요즘 웃을 일이 없어서 답답하다면, 또는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는 무조건 무겁고 진지할 거라는 편견이 있다면, <육사오>를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제가 극장 좌석에서 배를 잡고 웃었던 그 장면들이, 당신에게도 똑같은 카타르시스를 줄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PFIGm2a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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