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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민트 (블라디보스토크, 첩보전, 류승완)

by Film Index 2026. 2. 23.

 

첩보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화려한 액션? 아니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플롯? 저는 최근 개봉한 <휴민트>를 보고 나서, 진짜 핵심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고립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류승완 감독이 2년 만에 내놓은 이 영화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남북 요원들의 의심과 배신을 그려냈는데, 예매율 36.8%라는 수치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몰입도가 상당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차가운 안개 속 첩보전의 시작

영화는 블라디보스토크라는 공간 선택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러시아 극동 지역, 남북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지대 같은 이곳에서 국정원 요원 조과장(조인성)과 북한 보위부 요원 박건(박정민)이 각자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조과장은 마약 루트를 추적하던 중 정보원을 잃는 실패를 겪고, 박건은 인신매매 사건을 조사하며 동포들을 심문합니다. 두 사람 모두 냉혹한 원칙주의자지만, 그 이면에는 각자가 지켜야 할 신념과 조직의 명령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몰입했던 건, 이들이 처한 '철저히 혼자'인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조직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한 준비생 입장에서도, 누구 하나 믿지 못하고 모든 걸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그 고립감이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최선화라는 변수, 흔들리는 신념

영화의 중심에는 신세경이 연기한 최선화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식당 직원으로 등장한 그녀는, 조과장의 휴민트(인적 정보원)이자 박건에게도 묘한 기류를 보이는 존재입니다.

"누군 아는 사이요?"라는 질문에 침묵으로 답하는 장면에서,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선화는 조과장에게 정보를 제공하지만, 그녀의 과거와 진짜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거짓말 탐지기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모습은 훈련받은 요원처럼 보이기까지 하죠.

제 경험상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믿을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할 때입니다. 선화라는 캐릭터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녀가 화면에 나올 때마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조과장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관객인 저도 덩달아 불안해졌습니다.

류승완표 액션, 그리고 하드보일드 연출

류승완 감독의 시그니처인 타격감 넘치는 액션은 이번에도 건재합니다. 특히 조과장이 정보원을 구출하려다 실패하는 장면, 그리고 박건이 조직원들을 상대하는 장면은 과장 없이 현실적이면서도 강렬했습니다.

로케이션 촬영으로 완성한 블라디보스토크의 비주얼도 일품입니다. 마치 그곳의 한기가 스크린 너머로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차갑고 클래식한 색감, 안개 낀 거리, 허름한 숙소들까지 모든 요소가 첩보물 특유의 긴장감을 증폭시켰습니다.

다만 제가 느낀 아쉬움도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서사가 다소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서 흘러간다는 점입니다. <베를린>이나 <모가디슈>에서 보여줬던 신선한 긴장감에 비하면, 이번엔 인물들의 감정적 결단이나 협력 구조가 어느 정도 짐작 가능했습니다. 고도의 심리전보다는 액션과 드라마의 쾌감에 치중한 느낌이랄까요.

사회 진출 전, 미리 엿본 냉혹한 세계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아직 취업 준비 중이지만, 이 영화 속 인물들이 느낀 불안과 절실함이 제 상황과도 어딘가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조과장이 정보원을 지키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장면, 박건이 조직의 명령과 개인의 판단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앞으로 제가 마주할 사회적 관계와 선택의 무게를 미리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생존을 건 정보전이라는 극단적 상황이지만, 결국 그들도 '개인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냉혹한 세계에 던져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블라디보스토크의 차가운 안개가 머릿속에 맴돌았던 건, 단순히 영화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제 미래를 어렴풋이 마주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휴민트>는 2월 11일 개봉합니다.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이라는 앙상블이 빚어내는 첩보 드라마를 기대한다면, 극장에서 꼭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제가 소개한 건 영화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부분이니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ECib0YPB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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